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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산

산과 여행/기타지역(인천.제주)

by 여정(旅程) 2007. 1. 7.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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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자 : 2007.01.03

 

위치 : 인천 강화

 

산행코스 : 적석사 - 낙조대 -고려산 -적석사

 

강화도 고려산 오련지 전설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천축스님이 고려산 꼭대기에서 오련지(오색 연꽃이 피어있는 연못)를 발견하고, 다섯 송이의 연꽃을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 마다 절을 세웠는데,
하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백련사,
파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청련사,
붉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적석사,
노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황련사,
검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는 흑련사 라고 하였다.

 

낙조대 적석사는 태고의 신비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관음기도 도량으로 1600여년 전인 고구려 장수왕 4년(AD416년)에 창건된 전통사찰입니다. 사적에 의하면 인도에서 오신스님(천축 조사)이 고려산 정상에 있는 오련지(五蓮池)에서 연못에 핀 다섯 송이의 연꽃을 꺾어 신통으로 하늘에 날렸는데 그 연꽃들은 제각기 다른 장소에 떨어졌고, 연꽃이 떨어진 자리에 청련사, 백련사와 없어진 흑련사,황련사와 더불어 적련사(赤蓮寺 : 현 적석사)를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절 이름이 적련사에서 적석사로 바뀐 것은 언제인지는 알려지지 않으나 일설에 의하면 사명에 있는 적(赤)자로 인하여 산불이 자주 일어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려 시대에는 선원사에서 팔만대장경을 제작하여 적석사에서 봉안했었다고도 하는데 몽고의 침입으로 인한 강화천도 시에는 이곳 적석사가 일시적으로 임금의 거처가 되기도 하였고 정명 공주가 난을 피해 이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적석사 대웅전 아래에 자리한 사적비는 1714년(숙종 40년)에 세워진 것이다. 글씨는 백하 윤순 선생의 작품인데 조선시대에 있었던 절의 중건중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당대의 명필이었던 백하선생의 작품인 적석사 사적비는 금석학의 명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삼성단은 낙조대 오르는 길목인 범바위 아래에 있는데, 석조 치성광여래와 산신, 독성을 모시어 산신각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재일 교포가 여기에서 기도를 하던 중 산신의 큰 가피를 받고 은혜를 갚기 위해 모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때문인지 현재에도 치병, 사업발전 등을 발원하는 기도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고려사>, <전등사 본말사지>, <강도지> 등에도 언급이 되고 있는 감로정(甘露井)은 적석사의 창건과 더불어 그 역사를 같이 하고 있을 정도로 오래된 것입니다.

대웅전 동편 돌 틈에서 나오는 물은 차고 달다고 하는데, 나라에 무슨 변란이 있거나 흉년이 들면 물이 마르거나 갑자기 흐려져 마실 수 없었다고 사적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사찰에 거주하는 대중의 숫자에 따라 물의 양이 틀려지기도 하는 이 우물은 위암에 걸렸던 사람이 오랫동안 물을 마시고 병을 치료하기도 한 신비한 우물입니다.

적석사 낙조대는 해질 녘의 일몰이 대단히 아름다워 강화8경중 제1경으로 일컬어지며 점점이 깔린 섬들 사이로 떨어지는 낙조는 가히 선경으로 불립니다. 낙조대에 모셔진 해수관음보살상은 관음기도 도량인 적석사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적석사 뒷산은 낙조봉이라 불립니다다. 해발 365m의 정상에 자연 조성된 1만여 평의 억새 밭은 또 하나의 절경으로 강화도의 새로운 볼거리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산 정상에서는 맑은 날에는 북한의 황해도 해주까지 볼 수 있고, 북녘땅을 가장 넓게 관망할 수 있어 통일교육의 현장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또한 낙조봉에서 억새 밭을 지나 10분 여를 걸어가면 넓게 펼쳐진 솔밭이 있어 삼림욕장이 되기도 하는데, 뿐만 아니라 솔밭에는 선사시대의 유적인 30여 기의 고인돌군이 있어 이를 찾는 이들에게 역사교육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98년 대 홍수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우리 적석사는 99년 진입로 확장 및 포장불사와 촉대 불사를 마치고, 2000년도에는 범종루를 증축 복원했으며 산신각 불사를 회향했습니다.

2001년에는 지난 수해때 발굴 된 고려시대 기와편 등을 근거 자료로 하여 대웅전을 복원 할 계획이며, 아울러 요사와 낙조대 해수관음 불사를 원만히 회향하는 날 1600년 해동 관음기도 도량으로 거듭 날 것입니다.
 
전체높이 394cm이고, 비신의 높이 304cm, 너비 69cm입니다.
1714년(숙종 40)에 세워진 <고려산적석사적비>에는 조선시대의 중수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산적석사비

그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에도 큰 화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폐허되지 않고 사격을 유지하였으며, 1544년(중종 39)과 1574년(선조 7)에 걸쳐 몇몇 전각이 중수되었으며, 1593년(선조 26)에 묘정(妙淨)스님이 선당(禪堂)을 중건하였습니다. 그후 1634년(인조 12)에는 계현(戒玄), 삼창(三昌)스님이 다시 전각을 중수하였고, 1639년(인조 17)에는 영윤(靈允)스님이 승당을 중건하였으며, 1644년(인조 22)에 묘정스님이 누각을 중건하였습니다. 그리고 1705년(숙종 31)에는 학균(學均)스님이 향로전을 중건하였고, 1707년(숙종33)에는 보익(普益)과 승감(勝鑑)스님이 누각을 중수하였으며, 1714년(숙종 40)에는 일행(一行)스님이 적석사비를 건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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