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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산과 여행/기타지역(인천.제주)

by 여정(旅程) 2007. 3. 7. 22:16

본문

 

2007. 03. 07

 

꽃샘바람 눈보라 치던 날.

 

 

 전등사(傳燈寺)

 

단군 왕검의 세 왕자가 쌓았다는 정족산 삼랑성(사적130호)내에 위치한 전등사는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 왕실의 원찰로서 眞宗寺(진종사)라 불리워 왔다. 지금의 전등사란 명칭은 고려 충렬왕 8년(1282)에 왕비 정화궁주가 옥등잔을 부처님께 바친 데서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보물 178호인 대웅보전은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집으로 광해군 13년(1621)에 지어진 조선 중기 건축물로서는 으뜸이며 특히 내부의 불단위에 꾸며진 닫집의 華麗精緻(화려정치)한 아름다움은 건축공예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고종 3년 병인양요시 프랑스군에 대항하여 결사호국의 각오로 전투에 임했던 장병들이 무운을 부처님께 빌기 위해 대웅보전의 기둥과 벽면에 자신들의 이름을 써놓은 흔적이지금도 곳곳에 남아있다.

 

 

 

남문

 

 

 

 

 

 날렵한 용이 비상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북문에서 남문까지 성돌이를 할수 있는 길인데 산책하듯 걸으면서 사방을 조망 할수 있고 전등사 전체를 한눈에 볼수도 있다

그간 여러번 전등사를 갔어도 이런 길이 나 있는건 처음 알았다

안가본 길을 찾아 밟아 보니 마음이 흐뭇하다

 

 

 

 

 

춘설 치고는 많은 눈발이 날려 산책하는 간간히 탄성을 지르며 다녔다.

산에서 내리는 눈은  바람을 타고 다시 하늘로 올라 가는것 처럼 보인다.

우연히 만난 눈보라에 어린아이처럼 연신 키득 거리면서 다녔다

춘삼월에 눈이라니...

 

 서문

 

 서문에서 전등사 내로 내려가는길

 

 

 남문 가는길에 있는 전망 바위

 

 봉우리에 보이는 희미한 길이 북문에서 남문으로 이어져오는 길이다

 

 사뿐하게 내려 앉은듯한 전등사가 평화롭게 비쳐진다

 

 

 

얼마전에 타계한 시인 오규원의 수목장을 지낸 나무 표시목이다

말로만 듣던 수목장을 처음 이렇게 보니  나무에 매달은 이름 석자가

많은 생각으로 다가온다

귀가 해서 오규원의 시를 다시 뒤적여 본다

 

겨울 숲을 바라보며

 

                                   오규원

 

겨울 숲을 바라보며

완전히 벗어 버린

이 스산한 그러나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 순간을 들판에서 만난다.

 

누구나 함부로 벗어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누구나 함부로 완전히

벗어 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을

 

겨울 숲을 바라보며, 벗어 버린 나무들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벌의 罪를 더 얻는다.

 

한 벌의 罪를 더 겹쳐 입고

겨울의 들판에 선 나는

종일 죄, 죄, 죄 하며 내리는

눈보라 속에 놓인다

 

 

 

 

 

이름표가 매달린 나무에 누군가가 꽃다발을 놓고 갔다

조금 멀리서 나무를 보니 고고한듯 외롭게 서있는 나무의 자태가

시인의 품성을 닮아 있는듯 했다

 

 

 

 

 

                                           정족산 가궐지
     

고려 고종46(1259) 풍수도참가 백승헌의 진언에 의해 고종이 건립했던 가궐터이다. 당시 백승헌이 낭장으로 있을때 고종이 적당한 도읍지를 문의하자 삼랑성및 신니동에 가궐을 짓도록 했고, 원종5년(1264)  몽고가 왕의 친조를 요구 했을 때 가궐을 짓고 마니산 첨성대에 제사를 하면 친조 문제가 해결되고 주위의 대국들이 와서 조공할 것 이라고 진언하였다 한다. 건물은 몽골군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으며 당시 이 가궐에는 왕이 거처하지 않을 때에도 평상시 처럼 금침을 깔고 의복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나무에 조각된것은 한눈에 봐도 달마상을 닮았다

예인들의 재주는 이런 장작으로나 패서 쓸법한 죽은 나무 줄기에도

이런 작품을 남겨놓는다

 

 산사의 물이니 좋은 물일것 같아 여러모금 마셔본다

 

몇백년을 견뎠을 고목들이 곳곳에 있어 오래된 사찰의 내력을 보여주고 있다

굵은 가지를 지탱해주는 쇠파이프가 조금 눈에 거슬리긴 했다

 

 중요한 사적 가치가 있는 범종이라는데 과문한탓에 그냥 사진기에만 담아서 왔다. 다음에 가면 한번 더 유심히 보려나...

 

 

 

 대웅전 네 모서리 기둥 윗부분에는  벌거벗은 여인상을 조각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절을 짓던 목수의 사랑을  배반하고  도망친 여인을 조각한 것으로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해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고 한다. 대웅전 내부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천장은 용,극락조,연꽃등으로 화려하게 채색하였고, 부처를 모신 불단과 닫집의 장식 또한 화려하다.

 

 

 

 

 

 

 

 

 

 

 생강나무가 꽃망울 터트리려다 꽃샘추위에 몸을 닫은것 같다

 

 

 죽림다원이란 전통 찻집에 들러 차 한잔을 마시기도 했다

학을 새긴 나무 조각이 언제 세워졌는지 예전에 없던 것들이 치장되어 있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그렇게 사람들과 말하면서 살수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찻집 내부

 

 도기에 담겨진 소국이 봄을  그대로 보여주는것 같다

 

 

벽난로의 따듯함이 찻집 전체를 훈훈하게 감싸준다

찻상과 다기의 어우러짐, 은은한 차향기가 너무 좋다

 

 

 

 

 

 

 

 

 

 

 

 

 

 

 

 

 

 전등사를 둘러보고 동막 해수욕장 가는길, 돈오리분대에서 잠시 차를 세우고 한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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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족산 사고를 빼놓고 못보고 온것 같아 다음에라도 보고 오려고 챙겨둔다

 

                                           정족산 사고
임진왜란 전에 실록을 보관하였던 사고는 내사고인 춘추관과 충주,성주,전주등 3개의 외사고가 있었으나, 임진왜란때 전주사고만이 화를 면하고 모두 소실되었다. 그후 임란의 병화를 피한 전주사고본이 한양에서 가까운 강화로 옮겨져 선조 39년(1606) 4월 복인 작업을 완료하고  전주사고본인 원본은 마니산 사고에  나머지 4부는 춘추관,태백산,묘향산,오대산사고에 봉안되었다. 마니산 사고는 병자호란의 피해와 효종 4년(1653) 11월 사각의 실화사건으로 삼랑성내 정족산 사고가 건립되어  이안 봉안되어 왔으나, 1910년 일제에 의해 국토가 강점되면서 정족산사고본은 태백산 사고의 실록및 규장각의 도서와 함게 조선 총독부 학무과 분실에 이장되었다가 1930년 경성제국대학으로 옮겨진후 광복과 함께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오고 있다. 정족산 사고는 1930년 전후에 파손되어 빈터에 주춧돌만 남아 있던 것을 1999년 강화 문화 사업으로 복원,정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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