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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산과 여행/서울·경기

by 여정(旅程) 2007. 5. 2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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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05. 25

 

 

역사 박물관을 관람하고, 마침 시내로 나온 산친구와 만나 점심을 하고 조계사를

방문했다

초등하교 시절까진 어머니를 따라 여러번 이곳을 와본 경험이 있다

내가 短命하다는 점괘를 받고나선 부처님 은덕이라도 얻어 명을 이어야한다고

열심히 이곳 절을 찾으셨던것 같다

그때야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소풍가듯 따라 나선곳인데 세월이 오래 흐른뒤에 다시 찾은

조계사는 어렸을적 보았던 조용한 절 분위기는 아니다

초파일 연등행사와 불사건립이 한창이어서 온통 원색의 연등과 사람들로 어수선한 터라

오래는 못 앉아있을 분위기다

예전엔 종로구 견지동이라고 어렴풋이 들었는데 수송동 44번지가 정확한 주소인가보다.

수송동 백송이 여기 있다는것도 처음으로 알게된다.

 

 

 

 

 

曺溪寺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 44번지
 
연혁 :
1911년 한용운과 이회광이 중동고교 자리에 각황사로 창건
1937년 현재자리로 이전하면서 태고사로 개칭
1955년 불교정화운동이 전개되면서 조계사라 이름지음
 

 

 

 

 

 

 

 

 

 

 

 

 

 

 

 ♧오래된 회화나무와 사리탑

 

사리탑은1930년 스리랑카의 달마파라(達摩婆羅)가 가져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 1과를 봉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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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수송동의 白松

 

우리나라 백송 8 그루중 하나

수령 500년정도로 추정. 조선시대 중국에 갔던 사신이 갖고 와서 심었다고 한다.

백송은 소나무과 소나무속의 상록참엽교목으로 나무껍질이 큰 비늘처럼 벗겨져 밋밋하고 흰빛이 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성장이 느리고 번식력이 약하며 개체수가 적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는 나무이다. 높이 1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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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앞에 있는 비각을 한번 카메라에 담아본다

수없이 오가며 봤던 비각이었을텐데 정작 무엇을 기념하기 위한것인지는 관심밖의 일이었다

스쳐지나갈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생각을 의식적으로 키워나가보려한다

우리의 소중한 역사적 흔적일진데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기울여 이런 체험학습의 기회를

자주 마련해야겠다

 

고종즉위 40년 칭경 기념비

 

고종즉위 40년 칭경기념비(高宗卽位 40年 稱慶紀念碑)는 고종(재위 1863∼1907)이 왕이 된지 40주년과 그의 나이 51세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 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비를 보호하는 비전 안에 있으며, 이 비석에는 고종이 처음으로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담겨있다.

비석은 귀부, 비몸, 이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몸 앞면에는 황태자인 순종의 글씨가 있으며, 비를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정자(停子)형 건물로 건물 기단 둘레에 돌난간을 설치하였으며, 이 건물의 남쪽에 설치한 문은 돌기둥을 세우고 철문을 달았는데, 문의 가운데 칸에는 무지개 모양의 돌을 얹어 ‘만세문’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고, 이 문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떼어 가서 대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광복 이후 찾아와 복원한 것이다.

 

만세문의 돌 기둥 각 면에는 동물 조각이니 문양들이 많이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이 문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떼어 가서 대문으로 사용하던 것을 광복 이후 찾아와 복원한 것입니다.

만세문 안으로 들어가면 이중으로 쌓은 기단 위에 큰 비각이 있습니다. 비각 앞 좌측에는 동판이 있으며, 서울시장 명의로 비각을 보수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밖에 안내판이 있는데, 오히려 흉물스러워서 철거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앙에는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답도가 2단으로 되어 있으며, 우측 앞 바닥에는 서울과 전국 각 지역과의 거리를 알리는 도로원표(道路元標)가 있습니다. 도로원표는 1914년에 설치되었으며, 이순신장군 동상이 세워진 아래에 놓여 있었는데 이 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두 단의 계단을 오르면서 비각 입구 위쪽을 보면, 기념비전(紀念碑殿)이란 편액이 걸려 있으며, 비각 안에 칭경기념비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석를 보호하기 위해서 세운 건물을 비각이라고 하는데, 이 곳은 다른 곳의 비각보다 크고 화려합니다.

규모는 작으나 경복궁의 근정전의 모양새를 따르고 비각이지만 궁궐의 전각처럼 화려하게 꾸며 놓아서 비전(碑殿)이라고 명명한 것 같습니다. 또한, 건물에 ‘전(殿)’자가 붙는 것은 왕과 관련된 건물이라고 생각하면 될겁니다.

 앞면에는 '대한제국 대황제 보령 망육순 어극 40년 칭경기념비(大韓帝國 大皇帝 寶齡 望六旬 御極四十年 稱慶記念碑)'라 씌어 있는데, "대한제국의 대황제(고종)의 연세가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인 51세가 되는 것과 보위에 오른 지 40년이 되는 경사를 기념해서 세운비"라는 뜻으로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이 쓴 글씨라고 합니다. 천장에는 궁궐의 건물과 같이 화려하게 단청이 되어 있습니다.

 

 기로소란...

기로소(耆老所)는 노년의 고관들을 우대 관리하는 관청으로 기사(耆社)라고도 하는데 태조 때에 경로 예우를 목적으로 설치된 관청이며 정2품 이상의 벼슬을 한 사람 중에서 70세 이상된 자나 임금도 연로하면 여기에 참가하여 이름을 적었다. 태조도 60세로 기로소에 제명하여 입사의 의식을 행하였다.

뒤의 임금들은 모두 조사(早死)하여 입사한 이가 없다가 숙종이 59세가 되던 해에 곧 60이 된다 하여 앞 당겨 입사하였고, 영조는 51세에 60을 바라보는 나이라 하여 기사에 들어갔다. 고종도 영조의 고사(故事)에 의하여 신하들의 권고를 받아 입사한 것이다. 군신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라 하여 관청의 서열로는 으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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