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의 비경은 폭포 주변을 중심으로 집중되어진 여러 명소들에 있습니다
대전사와 거리도 가까와서 대전사를 들러 주왕산 갈림길에서 좌측 제1폭포길로 들어서면
주왕산의 절경을 한꺼번에 감상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왕산을 먼저 오르고 하산길에 폭포를 비롯한 주왕산의 여러 명소를 구경했습니다
주왕산의 절경을 이루는 암석들은 화산의 분화구에서 폭발한 뜨거운 화산재가 지면을 따라 흘러내리다가 쌓여
굳어진 '회류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회류 응회암들은 침식에 약하기때문에 풍화 차이에 따라 수직절벽이나 계단 모양의 지형, 폭포등을
만들어 내게 되는것입니다
주왕산을 형성한 화산활동은 지금으로부터 약7천만년전으로 추정됩니다
지질학적으로 중생대 백악기 후기인데 이때가 바로 한반도에 공룡들이 떼지어 살던 때입니다
급수대와 제1폭포는 이러한 주상절리와 회류 경계면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학소대(鶴巢臺)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절벽 위에는 청학과 백학 한쌍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고 합니다
옛날 백학이 사냥꾼에게 잡혀 짝을 잃은 청학은 날마다 슬피울면서 바위 주변을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췄다는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지금 학은 간데없고 그들의 보금자리 터만 절벽 위에 남아 옛주인을 그리워 하고 있습니다
시루봉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측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사람의 옆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시루봉에는 옛날 어느 겨울에 한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때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바위 밑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합니다
골바람(谷風) 부는 곳
골짜기에서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바람
춘양목(春陽木)
금강산에서 울진,봉화를 거쳐 영덕, 청송일부에 걸쳐 자라는 소나무는 일반 소나무와는 달리 줄기가 바르고 마디가 길고
껍질이 유별나게 붉습니다. 이 소나무는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금강 소나무 혹은 줄여서 강송이라하고 춘양목이라고도 부릅니다
또한 결이 곱고 단단하며 자른 뒤에도 크게 굽거나 트지 않고 잘 썩지도 않아 예로부터 소나무중에서 최고로 뽑힙니다
이런 귀한 소나무도 일제 강점기때 영주~ 봉화~태백으로 이어지는 산업철도가 놓이면서 무차별 벌채되었습니다
금강소나무는 경북 봉화 춘양역에서 철도를 이용해 서울로 옮겼는데 사람들은 춘양역에서 온 소나무란 뜻으로 춘양목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급수대(汲水臺)
신라 37대왕인 선덕왕이 후손이 없어 무열왕(29대)의 6대손인 김주원을 38대 왕으로 추대하였으니 때마침 그가
왕도인 경주에서 200리나 떨어진 곳에 있었고, 홍수로 알천이 범람하여 건너올수 없게 되자, 대신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라 하여 상대등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김주원은 왕위를 양보하고 이곳 주왕산으로 피신하여 대궐을 건립하였는데, 당시 산위에는 샘이 없었으므로 계곡의 물을 퍼올려 식수로 사용하였습니다
그후로 이곳을 급수대라 이름짓게 되었습니다
병풍바위
연화봉
주왕암
주왕굴
무장굴
자하성(紫霞城)터
달기약수
청송읍에서 주왕산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 약수는 1백여년전 조선조 철종임금때 금부도사를 지낸 권상하라는 사람이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수로를 내던중, 바위틈에 있는 버드나무를 뽑아 냈는데 물이 계속 올라와 이상히 여기고 물맛을 보았더니 트름이 나면서 뱃속이 편해져 이때부터 약수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달기약수』라는 명칭은 물이 솟아오를 때 『꼬르륵, 꼬르륵』하고 닭 울음소리를 내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이름을 붙인것입니다
물맛은 약수 색깔에서도 짐작하듯 쇳물 그대로의 맛이나며 탄산수처럼 톡쏘는맛도 나더군요
비위가 좋지 않은 사람은 한모금을 넘기기가 어려울것 같군요
약수주변으론 달기약수로 만든 닭요리 전문점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