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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락산 ~ 가야산

산과 여행/충청도

by 여정(旅程) 2010. 3. 2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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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자 ; 2010. 3. 18

위치 : 충남 예산군. 서산시 ,당진군 .....가야산678m, 석문봉 653m, 일락산521m

산행코스 : 개심사 - 일락산 - 석문봉 - 가야봉 - 남연군묘- 상가리주차장

 

일락산과 가야산은 예산과 당진 서산에  걸쳐있는 산으로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 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터 , 

개심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들을 거느린 산이다.

등산코스도 다양하게 만들어져있어 어디에서든 상황에 맞게 산행을 시작할수 있으며

여름철엔 용현계곡도 물이 좋아 인기가 많다

사찰과 계곡,유적을 간직한 가야산은 적당한 높이에 등로가 별로 어렵지 않아 대중적으로 산행하기 좋은 산이다

정상인 가사봉엔 중계시설로 들어차 있지만 근접해서 가까이 갈수 있고

석문봉에서 가사봉에 이르는 일부 암릉구간은 다소 주의를 요한다

그러나 석문봉에서 옥양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부드러워 수정봉을 거쳐 마애삼존불까지 어려운 길은 거의 없다(갈림길은 주의)

개심사에서 시작해 석문봉, 옥양봉, 수정봉 능선을 거쳐 마애삼존불을 보고 보원사지까지 지나면

 개심사로  원점회귀하는 등로도 잘 만들어져있다

우리 나라 손꼽히는 명당중 하나인 가야사를 불태우고 조성한 남원군의 묘를 가보는것도

가야산 산행의 빼놓을수 없는 포인트이다

 

 

 

 

 

 

 

개심사 가는길  350만평에 달한다는 삼화목장을 차창밖으로 지나친다

 

 

 

 

 

 

 

                                                                 개심사(開心寺)

 

지극히 소박하고 규모가 작은 절이지만 '나의문화유산 답사기'에서 5대 명찰중 하나로 꼽을만큼 유서 깊은 절이다

초파일을 전후해 절집 마당의 왕벚꽃이 만개할때면 찾는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다

특히 겹왕벚꽃과 청벚꽃은 흔히 볼수 있는게 아니기때문에 출사를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개심사..속세의 번뇌를 비우고 마음을 열게하는 그곳...

인적드문 봄날 하염없이 내려앉는 벚꽃들을 본다거나 오늘처럼 뜻하지 않는 춘설에 절집 마당을 걷노라니

개심사라 칭한 그 까닭을 조금은 알듯말듯...

가야산도 일락산도 아닌 상왕산 개심사라 하였는데 정작 상왕산은 몇번이고 비껴만 간다

 

개심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 백제 의자왕 14년 혜감국사가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진덕여왕 5년(651)과 의자왕 14년(654)은 다른 해에 해당한다.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 14년(654) 혜감국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1941년 대웅전 해체 수리시 발견된 기록에 의해 조선 성종 15년(1484)에 고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건물은 고쳐 지을 당시의 모습을 거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문화재청자료)

 

 

 

 

 

 

 

 

 

배롱나무

 

 

 

 

절에가서 가끔 볼수 있는 심검당이란 당우는 '칼을 찾는 집'이라 해석된다

이처럼 쓰이는 까닭은 불교에서는 번뇌를 풀에 비유하고, 이번뇌(풀)를 끊어버리려면 칼이 필요한 이치로서

여기서 말하는 칼이란 지혜의 칼을 의미한다

개심사 심검당은 요사채로 쓰이는데 본채에 덧대어 지은 형식으로 툇마루가 딸린 일반 가정집같은 인상을 주는 소박함이 있다

특히 기둥과 대들보로 쓰인 자연 그대로의 휘어진 나무가 오랜세월 묵묵히 견뎌낸 개심사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심검당(尋劍堂)

 

 

 

상왕산 코끼리가 이곳에 와서 물을 먹으라고 만들어 놓았다는... 

경지

 

 

 

 

 

 

 

 

 

개심사를 지나 절 뒷편으로 산신각이 있는데 산행은 이곳을 경유하여 시작하게된다(사진이 없네..)

 

 

 

 

아무도 먼저 다녀가지 않은 눈쌓인 솔숲길을 걸어간다

육산인 일락산 가는길은 소나무숲길이라 산림욕에도 좋은 길이다

 

 

 

 

 

 

 

 

 

 

 

 

 

 

고풍저수지,마애삼존불이 있는 방향

 

 

일락산 정상에는 표시석 대신 나무에 붙인 표찰이 고작이며 정자가 하나 있어 쉼터삼아

머물게 되는곳이다

정자에서 보면 석문봉에서 옥양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길께 뻗어있다

일락산 정상

 

 

 

 사람들이 간식거리를 뒤적거리는 내내 바로 곁에서 지켜앉아있던 새가 떠날 기미를 안보인다

과일조각을 던져주니 기다렸다는듯이 그 작은 부리로 잘도 받아먹는다

산에가면 야생 조류들도 이젠 사람들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먹을것을 달라고 기다리고 있으니...

 

 

 

 황락저수지

 

 

 

 

 

 

중앙이 석문봉

 지나온 일락산 능선

 

 

사잇재(흰색임도), 좌측 용현계곡 우측 일락사방향,우측 봉우리가 사잇봉

 

 

 

 

 

석문봉 가는길 전망암인 사잇봉(604m)

 

 

 석문봉을 거쳐 가야할 가야산 정상부, 좌측으로 살짝 원효봉도 고개를 든다

 

석문봉

 

 

 

신창저수지

 

 

 

 

 

 

석문봉에서 보는 가야산 정상부

 

 

 

 

좌측의 일락산 능선과 해미산악회 백두대간 종주 기념탑

 

 

 

 

옥양봉  능선

 

 

 

뒤돌아본 석문봉

 

가사봉 가는 칼등 능선

 

 

 

 

 

 

지나온 석문봉 능선

 

 

 

서산시 방향

 

 

서원산

 

 

 

상가저수지와 서원산

 

 609m봉

 

 

 가야봉 정상부

 

 

 

 

 

 상가저수지와 옥양봉 능선 

 상가저수지와 가야봉

 

 

 

남원군 묘를 이장할때 광천리 남은들주민들이 극진히 모셨던 보답으로 그때 쓰였던 상여를

남은들 사람들에게 기증한것이다

진품은 다른곳에 있고 이곳에 있는 것은 재현품이다

 

 남은들 상여

 

 

 

 

흥선 대원원군의 부친인 남연군의묘가 위치한 자리는 본래 가야산 일대에서 제일 큰절인 가야사가 있던 곳이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2대에 걸쳐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아버지묘를 경기도 연천에서 이곳으로 이장한 것이다.
그즈음 대원군은 왕권에 야심을 품고 있었기에 갖은 방법을 써서라도 목적을 달성하려 했을것이다
그래서 찾아낸곳이 가야사가 있던 자리인데 이곳은  대원군이 찾던 명당중의 명당자리였다

 

아버지를 편히 모시려는것보다는 욕망이 앞서 수십개에 달하는 암자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큰 절이었던 가야사를 불사르게 하고 

수많은 유물들을 허물게 하여 이 묘자리를 차지 한 것이다.
1869년에 오페르트 도굴사건과 더블어  전주 이씨가 멸망한 이후 묘소는 황폐화되었다

그러나 이후 후세사람들이 왕실묘라하여 잘 보존해 와 오늘에 이르렀다

 

남연군 묘가 세워지게된 동기를 생각하면 참으로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부끄러운 과거사의 한단면이다

왕권에 대한 치열한 야망으로 명당자리를 차지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이어져오고 있는 풍수지리설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실제로 2대에 걸쳐 왕이 나왔으니 후손들은 부귀와 영화를 누렸을지언정 고종과 순종이후 나라는 멸망하였으니

과연 이곳은 누구를 위한 명당이었을까

그리고 명당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새삼 생각해보게된다

 

죽을때까지 버리고 비우면서 마지막엔 그 흔한 관 하나 없이 가사한장만 덮고 입적하신 법정 스님이

떠오르는건 많은 교훈을 더해주는 일이다

 

 

남연군의 묘

중앙에 옥양봉이 내려다보고 있다


 

 

 

 

 

산행후 간월도에 잠시....

오늘따라 시퍼런 물빛이 더 추워보인다

강풍이 불어 춥기도 하고 건너갈 마음이 없어 간월암 경내는 안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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